2022.06.28 (화)

우리고장 이야기

경기도 광주의 자랑 '신익희' 선생

 경기도 광주에 있는 '신익희' 선생의 생가를 알고 있습니까?

 '신익희' 선생의 호는 '해공'으로, 우리나라의 정치가이자 독립운동가다. 그는 8·15 광복 전후의 대표적인 정치가로, 상해 임시정부의 내무부장, 국회의장, 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역임했다.

 

 '신익희' 선생은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순국한 '신 립(申 砬)'장군의 10대손으로, 1892년 6월, 광주군 초월면 서하리에서 판서를 지낸 '신 단(申 壇)'의 다섯 아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9세에 이르러 일본 와세다 대학교 정치경제학부에 입학해서, ‘재일통일학우회’를 결성하고, 안재홍·정세봉·문일평 등과 함께 잡지 <학지광>을 발행했다. 1953년엔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고, 친선사절로 각 우방국을 순방했다. 2년 후, 재야 세력을 규합하여 민주당을 창당하고 최고위원에 취임했다. 하지만, 195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호남지방에 유세하러 가던 중, 5월 15일 뇌출혈로 사망했다.

 

 선생의 생가는 현재 위치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m지점에 있었으나, 1865년 대홍수로 가옥 일부가 파손되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생가에는 유품으로 목판, 고서, 휘호(친필), 놀이용 화살 등이 보존되어 있다. 가옥은 안채와 바깥채로 구성되어 있고, 목조 기와집으로 건통 한옥의 외관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신익희' 선생의 생가가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건, 광주 시민의 관심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풍 구경하기 좋은 가을! 자연과 함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신익희' 선생의 생가에 방문해 보자! 그리고 우리나라를 사랑했던 선도의 마음을 느껴보자!